본문 바로가기
생각 사다리

소현세자와 현대 국제 정세

by 행복해 지는 곳 ^*;*^ 2020. 10. 28.
반응형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소현세자의 이야기에서 현대의 국제 정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를 생각해 봅니다.

 

 


 

 

조선은 병자호란으로 오랑캐인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에 볼모로 내주었습니다.

당연히 조선 조정은 반청 분위기로 들끓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이미 청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청에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성격이 달랐다고 합니다.

뒤에 효종 왕으로 등극하는 봉림대군은 청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웠지만, 소현세자는 국제 정세가 기울었음을 읽고 청과 우호관계를 맺으려 노력했습니다.

 

자연히 소현세자는 청의 관리들과 가까워졌습니다. 청의 관리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조선과의 관계에 다리를 놓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즈음의 조선은 명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청과의 항복조건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시간 끌기 작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청에서는 다시 조선을 쳐야 한다는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었습니다.

만약 청이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재기 불능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현세자는 청의 관리들과 만나 양국의 입장을 조율하려고 엄청 애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한 노력과 소현세자의 외교 능력까지 곁들여져 청에서도 소현세자에게 감동을 받고 조선과의 창구를 소현세자로 단일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조선에서는 오히려 소현세자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인 인조도 소현세자를 믿지 못하고 중국에 사람을 보내 소현세자의 행동을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청나라 관리들과 어떤 관계인지, 혹시나 반역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지 보려는 것이었겠죠. 청나라를 업고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인조는 비록 아끼던 자기 자식이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소현세자가 못마땅한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정치란 그런 것입니다. 자기 자리는 자식과도 나누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던 중 명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명나라까지 없어진 마당에 청나라는 조선의 왕자들을 붙잡아 둘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내 줍니다.

 

 

소현세자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반청 분위기에 있던 조선의 조정은 청나라와 가까워진 그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환영 연회도 없었다고 합니다. 소현세자는 청에서 가져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 아버지 인조에게 주었는데 그중에는 청 황제에게 받은 벼루도 있었습니다. 인조는 화를 내며 그 벼루를 집어던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던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돌아온 2달 뒤 갑자기 의문을 죽음을 당했습니다. 여러 정황과 실록에 나와 있는 소현세자의 시신 상태 등으로 보아 독살당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뒤에 봉림대군은 인조의 뒤를 이어 효종으로 등극하여 북벌을 추진하다 실패하게 됩니다. 

 

오랑캐라 여기던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치를 당했으니 복수해야 한다는 여론이야 당연히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힘도 기르지 않고 무턱대고 복수하겠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소현세자는 무모한 복수보다는 국제정세를 보고 실리를 구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 아담 샬이라는 유럽의 선교사를 만나 서양 문물을 공부하고 우리나라에 들여오려는 노력도 했습니다. 즉 마음만 앞서는 북벌이 아니라 우선 나라를 일으키는 데 힘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속 좁은 인조와 쥐뿔도 없으면서 명분만 내세우는 조정 관리들에게 의심을 받았습니다. 물론 청나라에 있으면서 수시로 돈을 보내 달라고 인조에게 편지를 보내서 피폐해진 국고에 부담을 주기도 해서 미움을 더 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청나라 관리들과 친분 관계를 쌓으려 했기 때문일 겁니다.

 

한 가지 소현세자의 실수라면 어쨌거나 반청을 외치는 조정의 분위기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국제 정세는 읽었지만 정작 자기 나라인 조선의 정세에는 무심했던 것이죠. 자기의 계획이 어떻다 해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일단은 조정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맞추어 주어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무시하고 청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움직였으니 조정의 대신들에게 좋은 빌미를 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소현세자가 국제 정세를 읽고 실리를 추구했듯이 조선의 정세도 읽고 일단 거기에 맞추어 주면서 왕위에 올라 개혁을 해나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소현세자가 죽고 반청의 분위기 속에 조선은 계속해서 폐쇄적인 국가로 남게 되고 200년 뒤부터는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요즘의 국제 정세 상황과 빗대어 생각해 봅니다.

미국이라는 현재 세계 최강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 러시아와 중국도 있습니다. 특히나 중국은 거대해진 경제력을 무기 삼아 이제는 노골적으로 미국과 대립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재수 없게도 우리나라는 중국과 코 앞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과거 625 전쟁 등의 기억으로 무조건 반중을 외칠 것인지, 아니면 소현세자처럼 일단 나라를 먼저 부강하게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공산주의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과 공산주의는 너무나 배타적 사상이라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가 배타적이라 하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기독교는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지 않으나 이슬람과 공산주의는 사람의 생명을 경시합니다. 그러니 절대 함께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대 놓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울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명분만 찾다 병자호란을 겪은 호된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지향점을 잃지 않되 실리 또한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선을 유지하면서 우리가 얻을 걸 얻으면 됩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요즘의 뉴스들을 보며 들은 생각이었습니다.

반응형

댓글0